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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인문학

긴긴밤 - 루리

by meticulousdev 2022.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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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린이 문학이라고요?

     어린이 문학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그냥 그런 동화 정도의 장르로 생각했습니다. 긴긴밤의 소개를 읽고 분량을 봤을 때까지도 이 생각은 변하지 않았었습다. 하지만 2시간 정도의 시간을 들여서 책을 다 읽고 난 후 느낀 건 제 예상은 편식쟁이의 선입견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궁금해 할 수도 있습니다. "대체 그냥 그런 이야기가 뭐예요? 그래서 긴긴밤은 무슨 내용이에요?" 책을 읽지 않았다면 더 이상 이 글을 읽지 않고 책을 읽고 오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긴긴밤은 작가의 글과 그림을 하나하나 느끼면서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작가가 심어놓은 장치들을 피하지 말고 지그시 밟으면서 말이죠.

 

*스포일러 경고

 아래에 작성된 내용들에는 긴긴밤에서 중요한 내용과 결말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으셨다면 책을 읽고 오시기 바랍니다.

 

2. 나의 이름은

    이 책의 시작은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정말 좋은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책의 시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나에게 이름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준 것은 아버지들이다. 나는 아버지들이 많았다. 나의 아버지들은 모두 이름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나의 아버지들, 작은 알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던 치쿠와 윔보, 그리고 노든의 이야기다.
- 긴긴밤; 루리; 문학동네 (2021)

 

대체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누구인데 다짜고짜 이름이 없다고 말하며, 이 이야기는 '나의 아버지들'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본인의 이름은 모르지만 나는 스스로가 누군지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유행하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다들 본인이 누군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기도 하는데 화자는 당당하게 스스로가 누군지 알고 있다고 얘기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3. 틀린게 아닌 다른 것을 인정하는 사회

   책이 시작하고 제일 먼저 코뿔소 노든이 등장합니다. 특이하게도 코뿔소는 코끼리 무리에 자라고 있습니다.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라는 코뿔소가 겪는 상황들은 다양성이 인정받으며, 서로가 서로를 돕고 사는 사회입니다. 할머니 코끼리는 자신이 코뿔소인 줄 모르고 외형적으로 다름에 걱정하는 노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눈이 멀어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절뚝거리며 이곳에 오는 애도 있고, 귀 한쪽이 잘린 채 이곳으로 오는 애도 있어.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와 살을 맞대고 걸으면 되고, 다리가 불편하면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에게 기대서 걸으면 돼. 같이 있으면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야. 코가 자라지 않는 것도 별 문제는 아니지. 코가 긴 코끼리는 많으니까. 우리 옆에 있으면 돼. 그게 순리야."
- 긴긴밤; 루리; 문학동네 (2021)

 

다음으로 등장하는 동물들은 펭귄 치쿠와 윔보입니다. 치쿠는 정어리 뼈를 가지고 놀다가 오른쪽 눈을 다쳐서 오른쪽 눈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윔보는 항상 치쿠의 오른쪽에서 걸으며 치쿠가 다른 펭귄들과 부딪히지 않게 도와줍니다. 그리고 둘은 펭귄 무리에 버려져 있고 모두가 불길해하던 알에 관심을 가지고 아빠들이 되기로 합니다. 책 속의 나는 이렇게 다양성을 인정 받으며 살아온 아빠들의 손에 키워지게 됩니다. 

 

4. 밤, 밤, 밤

    책에서 밤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제목을 긴긴밤으로 정할 정도면 밤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노든이 코끼리 고아원을 나와서 가족을 꾸리고 행복한 생활을 할 때 밤은 객관적으로 묘사되는 밤이었습니다.

 

둥근달이 높게 뜬 밤이면 훌륭한 진흙 구덩이를 찾아 달빛을 받으며 목욕을 즐겼다.
- 긴긴밤; 루리; 문학동네 (2021)

 

그냥 둥근 달이 높게 뜬 밤일뿐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에게 아내와 딸을 잃고 난 후 노든의 밤은 길고 어두워집니다.

 

밤보다 길고 어두운 암흑이 찾아왔다.
- 긴긴밤; 루리; 문학동네 (2021)

 

그리고 노든과 치쿠가 알을 가지고 바다를 찾아 떠는 힘든 일정 속에서 밤은 이제 긴긴밤으로 표현됩니다. 지쿠가 죽는 날도 긴긴밤이 이어졌습니다.

 

그날도 긴긴밤이 이어졌다. 노든과 치쿠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 긴긴밤; 루리; 문학동네 (2021)​

 

치쿠가 죽고 난 후 나와 노든이 단 둘이 여행을 떠나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기나긴 밤은 계속됩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던 부정적인 의미의 긴긴밤은 이야기가 후반부로 넘어감에 따라서 차차 성장의 시간을 의미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긴긴밤 덕분에 더 이상 어리석지 않았다.
- 긴긴밤; 루리; 문학동네 (2021)​

 

밤은 행복한 순간이기도 했으며 불행한 순간이 되기도 했지만 결국 등장하는 동물들을 성장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밤은 이름은 없지만 스스로가 누군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시간으로 작용하였습니다.

 

5. 그리고 다시 밤

    이야기의 끝에서 나는 그렇게 도달하고 싶었던 바다에 도착합니다. 초원에서만 살아서 바다를 한번도 본적 없었던 노든과 동물원에서만 자라서 한번도 실제 바다를 본적이 없는 치쿠가 나를 위해서 도달하려고 했던 그 바다입니다. 바다를 만난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물 속으로 걷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 고 있다. 
- 긴긴밤; 루리; 문학동네 (2021)​

 

과연 바다에서의 긴긴밤은 어떤 밤일까요?

 

6.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행복한 결말을 생각했습니다. 앞서 말한 그냥 그런 동화처럼 "모두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 말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인간들의 수렵 때문에 힘들어하는 동물들을 사실적으로 이야기했으며, 인간들의 전쟁으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동물들을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심지어 동물들을 돕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마저 동물들을 귀찮게 하는 행동이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현실적이었지만 슬펐던 부분들은 모두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지 못한 것입니다. 인간을 만나면 죽고, 아프면 죽고,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서 죽어갔습니다. 

 

7.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글이 끝난 후 8장의 그림이 나옵니다. 어쩌면 글이 아닌 그림들로 책의 결말을 얘기하고 싶은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그림들 속에 궁금증을 남기도 하였습니다. 과연 초원 위를 날아가는 저 플라밍고들 중 한마리는 동물원을 탈출했던 플라밍고일까요? 마지막 사진의 펭귄 무리들 속에서 홀로 뒤를 돌아보고 있는 펭귄은 나일까요?

 

8. 감사 글

    이 책은 난개발 독서모임에서 선정되어 읽게 된 책입니다. 또한, 작성된 내용은 모임에서 이야기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과 관련된 의견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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