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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인문학

[시집]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 류시화

by meticulousdev 2022.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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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를 싫어했던 이유

    성인이 되고 책 읽기를 취미로 가지기 전에는 시를 정말 싫어했습니다. 아마 시작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여러 편의 시를 외워오는 숙제를 하고 나서부터였을 것입니다. 좋아하는 시도 아니고 5편 정도의 시를 외우고 그중 한편을 선생님이 정해주시면 낭송해야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싫어하던 저는 이 숙제가 너무나도 싫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고 내신과 수능 공부를 위해서 시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때가 시를 싫어하는 절정의 순간이었을 겁니다. 시를 분석해서 답을 고르면 저는 항상 30%만 정답인 답을 골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번은 학원 선생님께서 저에게 친구가 없냐고 물어보시기도 하셨습니다. 생각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렇게 시를 분석하는 것은 어려웠고 저에게 시는 뭔지 알 수 없는 문장의 집합이었습니다.

 

기억한다

... (전략)
언제부터 시인이 되었냐는 질문에
언제부터 시인이기를 그만두었냐고 되물은 시인을 기억한다
... (하략)

-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류시화; 수오서재; 2022

 

2.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던 시 한 편

    그래도 항상 기억하고 있던 시 한 편이 있었습니다. 집의 책장에 항상 꽂혀있었고 다이어리에 적혀있던 시입니다. 바로 류시화 시인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입니다. 길을 가다가 누군가가 갑자기 아는 시인과 시 한 편을 얘기해보라고 물어본다면 바로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시입니다. 초등학생일 때부터 항상 기억 저편 어딘가에 있던 그런 시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에 뭔지 모를 멋짐이 느껴지는 제목에 빠져서 기억하고 있던 시입니다. 읽었을 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고 열심히 분석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한 편의 시였습니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비목比目 - 당나라 시인 노조린의 시에 나오는 물고기

-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류시화; 열림원; 1997

 

3.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여름휴가로 떠난 제주도에서 작은 책방을 가게 되었는데 류시화 시인의 신간인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을 보게 되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책을 집어 들었지만 역시나 시는 어려울까 하는 생각에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그렇게 망설이다가 전자책으로 읽어볼까 하여 전자책도 찾아보다가 시집이니 종이책으로 사서 읽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여행지에서 저와 여자 친구는 책을 사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책을 구매하니 류시화 시인이 써주신 편지 한편이 동봉되어 있었고 편지를 시작으로 여행지에서 시집 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책을 구매하시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도 좋았지만 그 외에도 좋은 시나 구절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특히 봄에 대해서 얘기하는 부분들은 정말 많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4. 봄을 이야기하는 문장을 곁에 둔다

    시라는 게 이렇게 보잘것없는 블로그 글에서 다 봐버리면 시집을 읽는 재미가 없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의 작성에 필요한 부분만 옮겼습니다.

 

다알리아의 별에서

속엣말 다 꺼내
산수유 핀 날
겨우내 집 안에 들여놓았던
다알리아 구근 내다가
당신과 둘이서 봄의 겨드랑이께 심었지요
... (하략)

-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류시화; 수오서재; 2022

 

저는 이 시에서 봄의 겨드랑이께라는 표현이 너무 좋았습니다. 대체 봄의 겨드랑이는 언제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봄에게 겨드랑이가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정해진 답은 없으니 제 마음대로 봄의 겨드랑이가 언제쯤 일지 상상하고 적어두고 다시 한번 소리 내어 읽어봅니다. 

 

봄의 겨드랑이께를 노트에 적어두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

... (전략)
꽃의 집합이 꽃들이 아니라
봄이라는 걸 아는 사람
... (하략)

-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류시화; 수오서재; 2022

 

꽃의 집합은 꽃다발이 아니고 봄임을 기억하고,

 

곁에 둔다

봄이 오니 언 연못 녹았다는 문장보다
언 연못 녹으니 봄이 왔다는 문장을
곁에 둔다
... (하략)

-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 류시화; 수오서재; 2022

 

언 연못 녹으니 봄이 왔구나라고 말해봅니다.

 

봄이 하는 일

... (전략)
주머니에서 '파손 주의' 꼬리표 붙은 희망 꺼내고
... (하략)

 

그리고 끝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희망은 깨지기 쉬우니 '파손 주의'가 붙어있음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확인 후 조심히 주머니 속에 넣어둡니다.

 

5. 다음 여행지에서는 또 다른 시집을

    이렇게 하여 시의 집합은 시집이 아니라 여행지에서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편지지의 재질 그때의 빛, 향기 그리고 시를 읽던 곳들의 느낌들이 각각의 시를 다시 읽을 때마다 피어날 것입니다. 꼭 다음 여행지에서도 시집을 사보려고 합니다. 이번 여행의 추억이 너무 좋았기에 이렇게 여행을 추억하는 방법을 하나 만들려고 합니다. 바쁘게 달려온 일상 속에서 힐링이 필요하여 떠났고 그곳에서 읽은 시집은 진정한 힐링을 선사해주었습니다. 이 시집에는 사랑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편씩 음미하려다가 너무 빠르게 읽어 버렸지만 밤이 되면 한편씩 꺼내보려고 합니다. 오늘의 꺼내볼 시는 비밀입니다. 비밀에 적혀 있는 시구들이 오늘 제 이야기 같기 때문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과 관련된 의견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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